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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뉴스 - 인터뷰 - 사회 - 기사보기
2015년 08월 27일 11시 31분 등록
 
“평화로운 마을, 평화로운 세상이 됐으면…”
평택 대추리 평화마을 신종원 이장
 

신종원(53·사진) 이장은 미군기지 확장으로 고향인 평택 팽성읍 대추리를 잃고 고향 사람들과 함께 노와리에서 대추리 평화마을을 일구고 있다. 농촌·평화·화합의 의미를 담아 평화마을을 만들어가고 있는 그를 만나보았다.

고향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
미군기지로 수용된 대추리 마을은 가을이면 너른 황금 들녘이 무척이나 아름답던 마을이었다. 이곳 사람들은 대대손손 척박한 땅을 가꿔 기름진 옥토를 만들었고 벼농사를 지어왔다.

농부의 아들이었던 신종원 이장 역시 부모의 뒤를 이어 농사를 지었고 가족과 함께 한평생 아름다운 들녘을 보며 행복한 삶을 살 줄 알았다.

하지만 2002년 한·미 연합토지관리계획(LPP, Land Partnership Plan)에 관한 협정으로 대추리·도두리 등이 미군기지 이전예정지로 확정됨에 따라 신 이장과 주민들은 고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빠졌다. 평생 이곳에서 농사만 짓고 살던 이들은 더는 농사를 짓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암담했고 고향을 지키기 위해 힘을 모았다.

2004년 5월 정부가 공권력을 동원해 대추분교를 강제 철거(행정대집행)하고 군인과 경찰 1만5000명이 너른 들판을 짓밟고 마을 주변에 철조망을 치는 것에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농작물이라도 심어놓으면 어찌하지 못하겠지’라는 생각에 농지에 종자를 심었지만 정부는 군·경찰을 투입해 자라나는 농작물을 군화발로 짓밟았죠. 특히 주민이 함께 힘을 모아 부지를 마련했던 대추초등학교가 강제 철거되는 것을 보면서 모든 것이 무너졌죠.”

충격과 심각한 좌절에 빠진 주민들은 하나, 둘 이곳을 떠났다. 신 이장은 억압으로 국민을 짓밟고 왜곡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한스러워 이 나라를 떠날 생각도 했지만 고향 사람들과 함께 살며 이 땅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농촌체험마을로 자리매김
2007년 대추리를 떠난 신 이장을 비롯해 대추리 주민 44가구는 3년 뒤 노와리에 정착했다. 이후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산 대추리 주민들의 삶과 대추리 마을을 후세에 알리고자 시민단체, 예술가와 함께 대추리 역사관을 개관하고 농촌과 평화, 화합의 의미를 담아 평화마을을 조성했다. 지난해 대추리마을협동조합을 설립한 뒤 최근에는 마을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이곳은 농사지을 땅이 없다 보니 주민들에게 이주 조건으로 정부에서 3년간 공공근로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는데 그 기간이 오는 11월이면 끝나죠. 주민 스스로 생계를 책임져야 해서 마을사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대추리협동조합은 토종 종자 지키기, 농작물 수확 및 음식 만들기, 목공예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해 농촌체험마을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런 노력으로 지난 6월에는 경기도행복마을만들기 콘테스트에서 최우수마을(문화·복지 분야)로 선정됐으며 내달 농림축산식품부가 주최하는 행복마을콘테스트 대회에도 출전할 계획이다.

“노동자는 일할 때, 농부는 농사를 지을 때 행복하듯이 우리가 대추리를 지키려 했던 것은 우리의 고향에서 행복과 평화를 간직하기 위해서였죠. 이제는 이 땅에 우리 같은 아픔 없이 평화로운 마을과 사회, 세상만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마이빌평택 정정화 기자 2015-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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